'미스코리아' 속 정선생과 고화정의 사랑이 영화'약속'보다 위대한 이유

드라마리뷰/OST 2014. 1. 24. 16:46

조폭치고는 맑은 눈과 온화한 심성을 가진 남자가 있다. 그리고 성공한 여의사지만 홀로 모시는 아버지의 병환과 씨름하며 하루하루 삶에 지쳐가는 여자가 있다. 어느날 상대조직의 보복으로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싣려온 남자와 그를 치료하게 된 여의사는 첫대면의 어색함과 두려움도 잊은 채 점점 서로를 의지하며 결국 사랑하는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앞에 놓인 서로 다른 현실과 명분은 그들을 비극적 결말로 이끄는데 이것은 1998년 개봉하여 크게 흥행했던 영화 '약속'의 이야기이다.

 

정선생과 고화정의 사랑이 영화 '약속'보다 위대한 이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현재, 거칠고 희망없는 하류인생의 남자와 성공한 엘리트 여의사의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로맨스가 다시 부활하였다. 바로 MBC수목드라마 미스코리아를 통해서이다. <미스코리아 11회>에서는 미스코리아에 도전하는 오지영의 본선무대 합숙장 입소와 그속에서 벌어지는 같은 방 후보간 시샘과 견제 등을 보여주며 앞으로 남은 그녀의 미스코리아 도전 역시도 평탄치 않으리라는 예상을 하게 만들었는데 한편 빚을 받아내기 위해 비비화장품의 김형준과 오지영의 미스코리아 도전을 돕게 된 건달 정선생 그리고 그를 애달프게 하는 비비화장품의 홍일점 연구원 고화정의 로맨스가 시작될 것임을 짐작케하는 내용을 담았다.

 

  

 

되돌아보면 영화 '약속'의 두 주인공 박신양과 전도연이 펼치는 로맨스는 누가봐도 아름답고 근사하며 격정적이었다. 경호원을 대동한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리낌없이 승용차를 선물하며 둘만의 멋진 바다여행 등 비극적 결말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두 사람의 애정은 짧지만 화려하게 불타올라 스크린을 가득채웠다.

 

하지만 드라마 <미스코리아> 속 정선생과 고화정의 로맨스는 영화 '약속'처럼 아름답고 화려하지 않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능력있는 화장품 연구원이 되었지만 도산할지도 모를 회사를 살리기 위해 또 자신이 개발한 화장품 샘플을 되찾기 위해 모든지 다 하겠다며 건달 앞에 무릎꿇는 고화정과 사랑하게 된 여자 앞에서 같은 건달패거리들부터 흠씬 얻어터지는 정선생의 로맨스가 어찌 아름답기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레스토랑은 커녕 동네 국밥집에서 단돈 4000원으로 먹는 점심일지라도 분명 정선생과 고화정이 서로에게 가지는 연민 역시도 사랑이다.

 

 

 

생각해보면 사랑이 별것인가. 반품된 화장품 박스를 옮기는 고화정이 힘들까 내색않고 대신 옮겨주는 마음 또 화장을 하든 하지 않든 관심없는 사람들과 달리 관심가지며 이쁘다 말하는 정선생의 숨길 수 없는 진심이면 거창한 로맨스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일 것 같다. 그래서 모두가 오지영의 미스코리아 도전에 매달려 고화정의 남모를 마음고생쯤은 간과해버려도 정선생의 투박하고 어설픈 마음전하기는 고화정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강한 힘을 지녔던 것이다. 그리고 고화정은 그 거부할 수 없는 못된 남자의 어설프고 못난 사랑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고화정이 처음부터 정선생의 마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턱대고 찾아와 동료직원들을 향해 윽박지르고 폭행하며 안아무인으로 날뛰는 그를 보며 고화정은 크게 분노하였고 자신의 자식과는 같은 비비화장품 샘플을 훔쳐 경쟁회사에 넘기려한 사실을 알았을때는 그를 인간이 아닌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단정지었다. 어쩌면 <미스코리아 7회>에서 그녀가 정선생의 샘플절도 사실을 알았을때 흘렸던 눈물은 비비화장품의 불투명한 미래, 동료직원들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순진한 자신의 마음이 이용당했다는 배신감 역시도 복받쳤던 감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샘플절도가 비비화장품의 오너이자 후배인 김형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그만의 선택이었고 정선생 역시도 사채업자들의 폭력과 협박에 좌지우지되는 비참한 인생이라는 것을 그녀가 알았을때는 지금까지 그를 향해 가졌던 날선 경계를 풀고 처음으로 어떤 선입견도 없이 그를 인간 정선생으로만 바라보는 연민의 감정을 가진다. 또한 그가 생각보다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변화된 심경 속 정선생의 점점 교화되고 자신들을 돕는 행동이 그것에 더해져 고화정은 그를 자신의 삶속 울타리안으로 맞아들인다.

 

정선생 역시도 처음부터 고화정과 김형준을 도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채업자 사장과 약속한 5억의 빚을 그들로부터 받아내면 그만이었고 밑바닥 인생 속 자신과 다른 김형준과 고화정 등으로 대변되는 먹물들의 발버둥이 그의 비뚫어진 자격지심을 무장해제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김형준과 오지영 그리고 비비화장품 속 사람들의 따뜻한 인간미는 악하게만 살아왔던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힘든 상황속에서도 작은 기쁨에 행복해하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그들을 보며 고화정이 그랬던 것처럼 정선생 또한 그들에게 가졌던 편견과 자격지심을 내려놓고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더욱이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많이 가지고자 비열한 짓도 서슴치 않는 바다화장품으로 대변되는 비정한 세상과 아름다움을 선발하는 미스코리아대회마저도 이권청탁 등의 시장논리로 얼룩지는 것을 경험하는 정선생은 이 못되먹은 세상과 맞짱뜨려는 김형준과 오지영을 점점 응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그가 남의 물건을 빼앗는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그의 지난 삶이 가진것 없고 배운것 없어 피치못해 살아야 했던 인생이었듯 그것이 그의 내면 속 선하고 따뜻한 양심를 가리게 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고화정은 그런 정선생의 마음 깊은 곳 내면을 알아 본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어떤 마음의 벽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서로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좋든 싫든 경험했던 시간들의 갭은 분명 생각과 입장의 차이를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마음의 벽을 만든다. 하지만 드라마 <미스코리아> 속 정선생과 고화정의 로맨스는 비록 그러함에도 가질 수 있는 공통된 분모 즉 본질적인 인류애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심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지 우리에게 시사한다. 

특히 많은 것을 가졌을때는 보이지 않았던 각 사회 구성원들의 진심이 외환위기라는 공통된 절체절명의 순간과 그런 삶의 고난이 닥쳤을때 어떻게 교합되고 서로를 어루만질 수 있는지 이것은 드라마 <미스코리아>가 정선생과 고화정의 로맨스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또다른 메시지이자 위대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과연 낡은 봉고차안에서 그들이 함께 들었던 영화음악처럼 정선생과 고화정의 소박하고 진솔한 로맨스는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지 김형준과 오지영의 희망어린 로맨스만큼이나 기대되고 응원하게 되는 또다른 그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