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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가득한 일렉트로카 - 랄프마이어즈 Ralph Myerz(feat, Christine Sandtorv) - Stormy Weathers
한낮에 계속된 소나기가 그친후 어둑해져가는 초저녁에 막 켜지기 시작한 상점가 네온속을 다소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여자가 있다. 아직 갈곳을 정하지 못한 그 발걸음은 많은 사연을 담은 듯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덤덤해 보이는 착시를 불러온다.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모를 그녀의 우산은 이따금씩 물기먹은 지면과 부딪히며 짧고 탁한 소리를 만들지만 멀리까지 울리지 않는다. 걷던 발걸음이 이윽고 사각모퉁이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영혼없는 마네킨처럼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앞에 나타난 클래식스쿠터 한대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이내 사라진다.
랄프마이어스(Ralph Myerz), 발음하기에 따라 랄프마이어즈라고도 할 수 있다. 때는 대략 4년전 즈음인 것 같은데 처음 그들의 음악을 들었을때 정처없이 걷는 여자의 비틀거리는 발걸음과 몽환적인 밤거리의 시선이라는 극히 감성적인 이미지가 떠올랐다. 흡사 퇴폐적이고 싸구려틱하지만 내면은 순수한 이중적 감흥이 묘하게 교차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대다수의 리스너들이 듣고 평하게 되는 감흥과 많이 다를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그런 이중적 감흥에 강하게 끌리며 랄프마이어스의 음악을 종종 들어오고 있다.
노르웨이출신 일렉트로니카 밴드 랄프 마이어스와 잭 헤렌밴드(Ralph Myerz And The Jack Herren Band)는 필자에게 항상 그런 느낌이다. 비창과 같이 순수하고 서정적이지만 The Rasmus(핀란드출신 록밴드)와 같이 마이너적이고 뒤틀린듯한 이미지는 그들의 음악에서 종종 발견하게 되는 필자만의 감흥이다. 아마도 북유럽 특유의 차갑고 건조한 환경적 요소가 국적과 장르를 떠나 공통된 매개체로 두 밴드의 정서를 관통하기 때문인 듯 하다.
랄프마이어즈는 Dj 에들렌드 셀레볼트와 그의 친구들 토마스론하임 그리고 타레이스트룸에 의해서 1997년 결성되었다. 그들의 밴드명은 저급 에로스필름의 대표감독인 러스마이어스(Russ Meyer)의 이름과 그의 공동 작업자였던 카메라감독 잭해런의 이름을 혼합하여 만들었는데 랄프마이어즈맴버들의 장난기와 독특한 성적취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Ralph Myerz(feat, Christine Sandtorv) - Stormy Weathers
하지만 그들의 다소 B급 가득한 정서와 발칙함에도 그들의 음악은 절대 가볍고 유희적이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음악성은 초창기 발표된 싱글들과 이어진 정규레이블 앨범을 통해 클럽신과 팬들의 큰 호평속에 더욱 도드라지게 된다. 그들 음악의 개성이라면 기존의 요란한 클럽 속 광기어린 일렉트로니카와 달리 오히려 라운지바 혹은 재즈바의 무드송에 더 가깝다는데 있는데 이번 시간에 감상할 'Stormy Weathers' 역시 다운템포 속 크리스틴 산토르프(Christine Sandtorv)의 몽환적인 보컬음색과 반복되는 신디사이저의 기계음이 더해져 전형적인 클럽 속 격한 굉음보다는 치정멜로영화의 음울한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아마도 끝나가는 겨울의 2월을 보내면서 대중들이 한번쯤 잡아두고 싶은 시간의 아쉬움을 더욱 와닿게 하는 곡일 것 같다. 이번 뮤직Beat시간은 그런 랄프마이어즈의 노르웨이풍 일렉트로니카의 나직한 읊조림과 마주할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