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사랑한 목소리 - 토요명화의 그녀 성우 장유진을 추억하며

TV속인물 2013. 5. 31. 23:50

영화배우 리즈테일러, 비비안리, 오드리헵번, 아네트베닝, 메릴스트립의 공통점은? 


헐리웃 최고의 여배우들? 아니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배우들? 아니다. 어느정도는 맞고 어느정도는 틀리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공통점은 바로 그녀들의 한결같이 아름다운 목소리, 그 목소리를 빚어낸 분이 성우 장유진씨라는 점이다.

 

판피린에스, KBS2토요명화, 우주소년원더키드, 개구쟁이 스머프(똘똘이스머프), 천사들의 합창, 가요산책 등 무수히 많은 영화와 방송, 광고CF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 모두를 울리고 웃기고 감동시키셨던 분, 이제 성우 장유진씨를 포스팅할 시간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포스팅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고 필자의 오랜 바람이었으며 그녀에 대한 오랜 향수와 추억을 가지고 있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하게된 것이 매우 즐겁다. 아마도 필자뿐 아니라 그녀를 추억하고 사랑하는 팬분들이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일것 같다.

 

그럼 어디서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해야할까..

 

비비안리                                    에넷베닝                              메릴스트립 

 

 

성우 장유진에 대한 추억

 

어린시절 학교에서 일찍 하교하는 토요일 낮에는 한창 개발중이던 목동아파트 단지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뒤엉켜 놀고 저녁에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영화를 보기 위해 텔레비젼 브라운관 앞에 앉아있곤 했었다. 영화의 내용이야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과 잘알지 못하는 배우들의 몸짓의 연속체였을 뿐이지만 현실과 다른 이국적 배경과 이국적인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었다. 하지만 그럴때면 어김없이 눈흘김을 동반한 어머니의 핀잔,

 

"그렇게 가까이서 보면 눈나빠진다. OO야."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거지소리때문에 대화 소리가 안들려.. "

 

라는 그럴듯한 변명을 해가며 브라운관 앞에 달싹하고 붙어앉아 영화를 끝까지 보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변명만은 아니었다. 자막이 아닌 오로지 성우의 더빙으로만 방영되던 당시의 방송특성상 성우들의 대화를 놓치면 가뜩이나 이해하기 힘든 영화의 내용을 결국 눈이 아닌 코로 보는 듯한 사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 당시에 영상보다도 농익은 성우들의 목소리에 더욱더 귀를 기울였던 것이 아닐까 지금에와서 생각이 들지만 영화 속 배우들의 몸짓외에도 때론 상냥한 듯 하고 때론 다부진 듯한 성우들의 맛깔스런 목소리는 확실히 그나름의 매력과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브라운관 영화보기의 매력과 즐거움 중 성우 장유진씨가 안겨준 영향이란 절대적이다.

 

당시에는 브라운관 외화속 여배우의 목소리를 내던 장유진씨의 존재를 당연히 몰랐었다. 코흘리개 국민학생이 그런것까지 관심을 두엇을리 당연히 없지 않은가. 막연히 재미있고 좋다정도의 감정을 가지고 있을때였고 그 즐거움을 준 성우가 장유진씨라는 것은 그때보다 조금더 머리가 굵어진 고등학생시절의 일이다.

 

▶성우 장유진의 광고CF 속 목소리  - 판피린에스CF

 

성우 장유진씨는 1964년 KBS 성우 7기로 방송국에 입사하여 그동안 수백편의 영화와 외화, TV애니메이션, 광고CF 등에서 전문성우로써 활동하였고 특히 작고한 영화배우 리즈테일러의 전문 성우로써 명성을 쌓아왔었다. 


또한 교통방송 tbs FM ‘장유진의 음악편지(95.1㎒)’ 등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진행자로써도 28년을 개근하며 그동안 많은 청취자들과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는데 작년 2012년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편지를 하차하며 그녀는 반세기에 가까운 길고 화려했던 방송계 생활을 은퇴하고만다. 그리고 이제는 방송을 떠나 재능기부 등의 형태로 장애우를 돕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이어가실 계획이라고 한다.   

 

성우 장유진  영화 젊은이의양지

 

몇해전 교대역에서 회사생활을 하던 시절에 야근을 참으로 많이 하였다. 일의 특성상 마감에 임박하면 몇달이상 야근과 철야를 이어가야했고 사회초년생으로써 참으로 버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늦은시간 탄 새벽택시안에서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듣곤 했던 "장유진의 음악편지"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국민학생시절에 외화를 통해 듣던 목소리와 그때의 목소리가 같을 순 없겠지만 당시 필자의 귀에는 전혀 변함없는 목소리로 들렸고 그 변함없는 목소리는 언제나 필자의 택시밖 새벽풍경을 영화속 장면처럼 혹은 아련하게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잔상들로 리와인드 시켜주곤 했었다. 

 

그것은 어린시절 상상했던 어른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사는 필자에게 잠시지만 한없이 너그러운 위로가 되었고 지친 일상의 힐링제였다. 또한 머리가 복잡해지고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 속상할때 듣게되는 라디오 속 그녀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는 어떤 격려의 말보다도 정말 큰힘이 되었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살았어도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항상 담고 살았었다. 하지만 그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도 찾지 못한 사이-바쁘다는 핑계로 사연과 신청곡 한번 보내보지 못했는데-그녀는 이제 방송을 떠났고 공식적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은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많은 아쉬움과 아련함이 가슴속에서 베어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필자와 팬들의 욕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그동안 더 좋은 목소리를 위해 공복을 참아내며 해야 했던 연기와 목이좋지 못해 방송이 힘든 상황에서도 쉼없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준 분이었기에 이제는 팬들이 바라고 대중들이 바라는 모습이 아닌 장유진씨 스스로가 바라는 삶을 가꾸시길 바라는게 떠나는 분에 대한 우리들의 작은 배려일 것 같다.   

 

 

▶성우 장유진의 라디오프로그램 음악편지 방송 중

출처 - 네이버블로그 혼수가전마스터 http://blog.naver.com/evilkid2000/80010955682

 

 

사람의 매력이라는 것이 보통은 외모를 기준으로 많이 판단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잘생겼다는 칭찬보다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들었을때 기분이 더욱 좋다. 과거에 그 어떤 칭찬을 해주었던 사람보다 목소리가 좋다는 표현을 해준 친구와 지인들을 더욱 잘 기억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필자에게는 그러한데 그래서 한때 잠깐이지만 성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시간이 있었다.

 

거창하게 성우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었던 것은 아니고 막연히 성우가 되어 외화 속 로버트테일러라든지 몽고메리클리프트와 같은 멋진 남자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더빙하는 모습을 연상해보고 혼자 만족스러워하던 시절정도라고 표현하는것이 맞을 것 같다. 가당치도 않지만 그 상상의 끝은 언제나 성우 장유진씨와 함께하는 고전영화 젊은이의 양지의 한장면으로 귀결되곤 했다.

 

지금보다 조금더 어린나이에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였다면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까. 아마도 개성있는 목소리와 성우에게 필요한 정확한 발음과 발성능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일단 그러한 능력이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필자가 성우에 관심을 드러내던 시기에는 90년대후반 IMF국가부도 위기상황에서 간판 영화프로그램이었던 KBS2토요명화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던 시기였고 급속히 보급되던 인터넷과 전방위적인 산업의 디지털화로 인해 성우라는 직업이 브라운관에서 자리를 잃어가던 시절이었기에 현실적인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영화 바람과함께사라지다 중

  

 

돌이켜보면 장유진씨는 방송과 미디어의 디지털화가 되기이전 아날로그방송시대의 대표적 인물이자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주말밤 영화팬들에게 TV브라운관을 극장으로 만들어주었고 새벽라디오에서는 청취자들의 동행자가 되어 잠못이루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으며 천사들의합창, 원더키드, 똘똘이스머프 등 재치있고 개성넘치는 캐릭터로 아이들의 벗이 되어주었었다. 또 그녀가 소개하는 TV광고 속 제품들은 언제나 그녀목소리만큼이나 신뢰를 주었으며 그렇게 그녀는 세대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20세기중후반 아날로그적 감성의 상징으로 우리곁을 지켰다.

 

 

 

그리고 21세기가 되어 수많은 방송과 라디오에서 휴대폰 문자사연소개, 인터넷신청곡 접수 등을 시도하며 디지털화에 따라 프로그램의 진행방식도 많이 바꾸었는데 장유진씨의 방송만큼은 편지와 엽서사연 등 아날로그적인 진행시스템을 유지하며 디지털속 끝나지 않은 아날로그적 감성과 향수를 대변하는 마지막 보류였었다.

 

그래서 그녀의 방송은퇴는 적잖이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녀의 은퇴와 더불어 추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사라짐이 못내 서운한 마음은 필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대중들이 각자의 추억과 기억을 그녀와 함께 공유하고 있었기에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녀의 은퇴 이전 방송에서 사라져야 했던 추억의 목소리, 성우들을 보아왔던 대중들은 마지막 보류였던 그녀를 놓아줌으로써 각자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이제 이별을 고해야 할때가 된 것이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든 그렇지 않든 그녀가 남겨준 좋은 기억과 작품을 자신만의 추억의 서랍에 담아두어야 한다. 

 

나만의 리즈테일러,

나만의 오드리헵번,

나만의 잉그리드버그만,

그리고 나의 똘똘이스머프와 안녕이다.

 

장유진 그녀는 2012년 9월17일 새벽3시가 가까워져 가는 시간 마지막 방송의 마지막 곡을 소개하며 때론 강직했고 때론 카랑카랑하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심히 떨렸다고 한다. 어찌 그 심정을 이해 못할 수가 있을까.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다음은 포스팅을 위해 준비하던 과정에 찾은 그녀의 마지막 방송에 대한 소회를 담은 인터뷰기사의 일부이다. 그녀가 그동안의 방송과 라디오를 통해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대중과 팬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그녀의 인터뷰말처럼 그녀의 목소리로 인해 행복했었고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녀로 인해 위안을 받았다. 그러하기에 그녀는 떠나지만 한동안 많은이들의 마음 한구석에 그녀의 존재가 비워지지 못하고 남아있을 것 같다. 또한 언제든 많이 그리울것 같다. 내 유년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목소리, 내가 힘들때 내곁을 지키며 위로해주던 목소리, 여기서 '나'는 필자 본인이며 우리 모두의 각자 자신일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사랑했던 목소리 장유진, 오늘은 무척이나 옛기억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그리운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