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고현정도 피해갈 수 없었던 불주사(BCG)의 추억

숨어있는1인치 2014. 2. 28. 16:55

인생을 살다보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꼭 해야 할때가 있다. 나이와 상황에 따라 그 일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하기 싫은 일에 대한 걱정과 고민들은 언제나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내키지 않은 일들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고래잡기(?)와 대입수능, 군대, 취업준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주사'라는 단어를 알거나 들어봤을 것 같다. 이번 시간에 이야기할 '불주사맞기' 역시도 어린 시절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 중 하나였으며 클리어해 나가야 하는 그 나이때 절체절명의 걱정거리였을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또 이 단어만큼 향수어리고 아련한 감정의 메개체도 없는 것 같다. 많은 것이 풍족하지 못했고 순수하기 그지 없었던 시절에 아이들이 증명되지 않은 루머와 허풍에 울고웃던 '불주사맞기' 시간에 대한 추억은 그래서 두렵고 무서웠던만큼 더욱 뇌리에 깊게 남아 종종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불주사'는 과연 무엇이었나.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어린시절 우리의 눈물과 콧물을 쏙빼놓고 각종 루머와 허풍에 가슴졸이게 했던가.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후진국형 질병 중 하나인 결핵(BCG bacille de Calmette-Guerin vaccine)을 예방하기 위해 학년별로 돌아가며 맞아야 했던 단순한 단체예방접종이었었다. 그런데 이 단체예방접종이 '불주사'로 둔갑하게 된 것은 당시 병원주사기가 귀했고 지금처럼 일회용 주사기를 사용할 수 없었던 상황때문에 알콜램프 불로 소독해가며 재활용해야 했던 즉 뜨겁게 달궈진 주사바늘의 피상적인 공포심이 만들어낸 웃지못할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불주사'로 명명되는 단체예방접종이 초등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림잡아 20대중반 이후의 한국인들에게는 이 '불주사'에 대한 아픈추억(?)이 왼쪽어깨 밑자리에 작은 상처로 남아 있을 것 같은데 살면서 많은 상처들이 생기고 사라지지만 좀처럼 이놈은 사라지지 않고 문득문득 그때그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센취한 감성에 사로잡히게금 한다. 한편 이 '불주사'의 흉터가 남게 되는 이유는 뜨거운 주사바늘이 남긴 화상의 흔적이라고 하는데 사람마다 크기가 제각각인 것은 피부체질의 상이함과 주사를 맞고 난후 사후관리를 제대로 못해(긁거나 비비는 행동) 더 커지거나 흉해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불주사' 흔적을 제거하는 수술도 많이 받고 있다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다. 이유야 어쨌거나 왼쪽어깨에 아무 흔적없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왠지 허전한 감정이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혀 모르는 누군가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왼쪽어깨 작은 생채기의 존재는 또 어떤 친근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할 것 같다. 특히 평소에는 멋진 외모와 화려한 말솜씨로 대중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들인 것만 같은 유명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에서 문득 그들의 왼쪽어깨에 새겨진 '불주사' 흔적을 보게 된다면 그들과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공동체로써 반가운 마음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이채영

황정음

 

반면 다른 나라에서도 '불주사'와 같은 이런 단체예방접종이 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물론 그들 나름의 방식이 있을테고 또 그것에서 생기는 그들 나름의 기억과 이야기가 있겠지만 가끔 한국인이라서 좋다라는 뿌듯함이랄지 소속감은 성별과 출신, 지역에 상관없이 이런 소소한 일 하나에서도 우리들만이 가지는 공통된 추억이 있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다.  

 

끝으로 개인적인 '불주사맞기'의 기억을 소회하면 일반인들에게 '불주사'의 흔적이 두곳인 것에 반해 필자에게는 그 흔적이 한곳뿐이다. 그 이유는 투베르 쿨린반응 테스트에 기인하는데 '불주사'를 맞기 전 이 테스트를 통해 양성인지 음성인지를 판별하게 되고 이 반응이 양성이면 몸속 질병에 대한 항체가 있는 것으로 또 음성인 경우 몸속 질병에 대한 항체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불주사'를 맞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양성이었던 필자는 이 어마무시한 '불주사'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긴장과 두려움으로 금새라도 울음보를 터트릴 것 같은 여자아이들과 한껏 거들먹거렸지만 실제는 무서웠던 몇몇 객기어린 남아이들에게서 받았던 부러움과 시샘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