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제목이 몹시 불편한 이유

드라마리뷰/OST 2014. 2. 26. 01:52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3회에서는 5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끝에 출소한 정세로(윤계상 분)가 분노와 복수의 감정을 안고 다시 한국땅을 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렵게 다시 찾은 한국땅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아버지의 빈자리와 망가진 자신의 인생 그리고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오명속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조모의 비참한 현실이었는데 더욱이 자신에게 살인누명을 씌운 이가 5년전 우연히 만나 좋은 기억을 가졌던 여자, 한영원(한지혜 분)이라고 오해한 그는 충격과 더욱 끊어오르는 분노로 오열한다.  

 

반면 정세로의 신분을 모르는 한영원은 5년전 기억나지 않는 인연을 끄집어내는 정세로를 불쾌하고 무례한 인간으로 치부하고 밀어내지만 세계적인 보석딜러 이은수로 신분을 세탁한 정세로는 이미 계획한 각본대로 다이아몬드 '천사의 눈물'의 한국전시 권한을 벨라페어에 안겨주며 벨라페어의 실질적 오너이자 한영원의 아버지 한태오(김영철 분)의 환심을 사고 더욱 벨라페어의 한영원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한편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를 보면서 아마도 동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Purple Noon 1961)'를 떠올렸을 분들이 많았을 것 같다. 욕망에 눈이 멀어 살인을 하고 타인의 신분을 훔친 사내의 삶을 비극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묘사했던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반세기가 더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명작으로 회자되는 영화인데 이번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를 보면서 정세로가 신분을 위조하는 설정의 유사성과 드라마 중간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등장으로 이 드라마가 단순 참조를 넘어 영화를 지극히 의식하고 기획되었음을 짐작케 하는데 어쩌면 명작에 대한 허성혜 작가의 오마쥬라고 확신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제목이 허성혜 작가의 명작영화에 대한 열렬한 오마쥬에 기인해서만 붙여진 제목인지는 사실 개인적으로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부 설정이 영화와 유사하고 드라마 중간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사운드 트랙이 흘러 나오지만 전체적인 설정과 스토리에서는 드라마와 영화의 유사성을 찾기 힘들다. 아니 전혀 별개의 영화와 드라마라는 편이 더 설득적이다. 

 

 

먼저 영화상에서 알랭드롱의 살인과 신분위조는 친구에 대한 일방적인 열등감에서 기인한 행동이었고 이 영화는 그 열등감이 어떻게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으로 변질되는지 그리고 한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 지극히 인간 본성에 초점을 맞춘채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는 순수했던 한 인간이 세상의 불의를 통해 어떻게 분노로 눈뜨게 되는지 그리고 등떠밀린 삶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어떤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과 주제를 나타낸다. 더욱이 알랭드롱은 친구의 돈과 여자를 탐하는 속된 욕망에 휩싸이지만 정세로의 욕망은 돈과 여자라는 세속된 목적보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이에는이 눈에는눈'이라는 원초적 복수에 사로잡힌 인간으로써 알랭드롱과 너무도 다른 캐릭터이다. 오히려 정세로는 영화 '올드보이' 속 이유도 모른채 감금된 후 빼앗긴 자신의 인생과 가족을 찾기 위해 미스테리한 사건의 심장부로 치닫는 오대수와 여러모로 더 닮아있다.

 

그렇다면 왜 드라마 제작진과 작가는 영화와 유사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이번 드라마에 동명의 타이틀을 넣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 이유를 드라마 엔딩부분에 등장하는 드라마 제작지원 회사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의 엔딩에서 선명히 보여지는 '태양자동문'이라는 드라마 제작지원사의 이름. 최근 종영되었거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 회사의 이름과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이름과 관련성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일까?

 

 

 

어떤 이들은 드라마제작을 지원한 것에 대한 당연한 마케팅이며 지나친 트집잡기로 비닌할 수 있겠지만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주군의 태양'을 예로 들면 이것이 단순 트집잡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심각한 작가주의의 간섭 및 훼손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드라마 '주군의 태양' 역시도 제작지원사가 '태양자동문'이었는데 여기서도 드라마의 제목과 제작지원사의 회사명이 겹치는 우연 아닌 우연을 볼 수 있다. 또한 극중 주인공의 이름은 태공실(공효진 분)이었는데 왜 하필 대한민국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성씨인 '태'씨가 주인공이어야 했을까. 더욱이 그런 억지스러움에 더해 극중 그녀의 호칭이 '공실씨'가 아닌 '태양'으로 불린 점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드라마 제작지원사의 합의된 개입이거나 무리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나마 '주군의 태양'에서 드라마의 제목, 주인공이름이 제작지원사의 이름과 겹치는 점이 딱히 극의 스토리와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넘어갈 수 있다지만 이번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서는 다소 우려스럽다. 특히 이번 드라마와 '태양자동문'이라는 제작지원사의 연상작용을 의도해 스토리와 주제에서 딱히 유사성을 찾을 수 없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제목을 차용한 듯한 인상과 의도적으로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사운드트랙을 극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삽입하여 의도적으로 영화와 드라마의 공통점을 끼워맞추려 한 이유가 제작지원사에 대한 마케팅을 위한 도구라는 의심을 좀처럼 지울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태양자동문'이라는 회사는 많은 국내드라마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기황후' '참 좋은 시절'은 물론 종영한 '그겨울에 바람이분다' '총리와나' 등 많은 드라마의 메인 혹은 서브 스폰서를 하며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드라마 제작에 있어 안정적인 제작지원과 협조는 분명 더 높은 퀄러티의 작품을 탄생하게 하고 완성도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지만 지원에 대한 댓가로 과한 요구와 드라마 내외로 몰입도를 해치는 마케팅은 오히려 극의 흐름을 깨고 시청자들의 이해를 방해하며 결국 시청자의 외면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여러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의미심장한 대사들의 향연, 점점 연기에 눈을 뜨고 있는 윤계상과 한지혜의 호연,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명품 조연으로 각광받는 배우 조진웅, 김영철, 우현, 정원중, 전미선, 김영옥 등 이 드라마를 봐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지만 작은 티끌에도 공든 탑은 무너질 수 있는 법이다. 이런 만고의 진리를 방송국과 제작지원사가 조속히 깨닫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